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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민주항쟁 30년 부산사업추진위원회 (Busan Derhocratic Mornorial Association)

6월 민주항쟁의 의의와 평가

6월 민주항쟁의 의의와 평가
6월항쟁

민주화운동으로서 6월 민주항쟁이 직접적인 투쟁의 쟁점으로 삼은 것은 고문치사 사건과 군부독재였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 요구로 내세운 것은 대통령 직선제를 위한 개헌이었으며, 이를 통하여 군부통치를 종식시켜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이룩한다는 것이 목표였다. 이러한 목표에 비추어 볼 때, 직선제 개헌요구는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한 제도적인 수단과 방법에 해당하는 것이다. 나아가 6월 민주항쟁의 전개과정을 살펴 볼 때, 비록 학생과 노동자들이 시위의 주도적 세력 형성하였지만 궁극적으로 일반 시민들의 지원과 동참을 통하여 최종적 승리를 획득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어느 특정 계급이나 사회세력에 의해 주도되었던 사회운동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시민혁명적 성격을 지니는 것이라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6월 민주항쟁은 운동의 주제나 목표의 측면에서 본다면 시민 민주주의적 투쟁의 성격을 지녔다고 하겠으며, 그 방법의 측면에서 볼 때는 평화적 혹은 합법적인 성격의 것이었다고 하겠다. 물론 항쟁의 직접적인 주체세력과 지도부의 구성이라는 측면에서 파악할 때, 6월 민주항쟁에는 일정 정도 민중지향성 혹은 계급주의적 급진성을 가진 지도부의 지휘 아래 수행되었으며, 여기에 중간층을 필두로 한 일반 시민들과 혹은 그리고 기층민중이 가세하여 시위세력이 형성되었다는 특징을 갖는다. 특히, 당시 국민운동본부의 지도부나 야당정치인들과 달리, 조직실무를 맡은 중간간부들과 청년회원 그리고 학생들은 민중적 정체성을 강하게 띠고 있었다. 실제로 이 시기의 학생운동, 특히 그 지도부는 이미

상당하게 계급주의적 편향성을 가지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월 민주항쟁은 운동의 목표와 방법, 주체 세력 및 참여세력의 분포를 볼 때, 전체적으로 시민항쟁의 성격을 지녔으며, 여기에 민중적 투쟁이 부차적으로 결합되어 있다고 하겠다. 6월 민주항쟁 이후 노동자 대투쟁의 과정과 학생 운동의 과격화-급진화를 겪으면서 시민적 성격과 민중적 성격은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거나 갈등하게 되었으며, 마침내 김영삼 문민정권의 성립과 함께 시민적 세력이 한국 민주화운동에 있어서 확실한 주도세력으로 등장하게 된다.

6월항쟁_부산진시장부근

이러한 6월 민주항쟁이 지니는 역사적 의의를 정리해 보기로 하자.
첫째, 6월 민주항쟁은 독재권력에 대항한 시민과 민중의 단합된 투쟁력으로써 군사 독재정권을 굴복시켜 공식적인 항복선언을 획득하였다는 점이다. 6월 민주항쟁은 4.19 혁명 이후 처음으로 무자비한 독재권력과의 험난한 대결에서 민중과 시민이 끈질기게 그리고 희생적으로 투쟁하여 마침내 독재정권을 붕괴시키고 민주주의를 확대할 수 있는 획기적 전기를 마련한 것이다.
둘째, 6월 민주항쟁은 억압적이고 착취적인 국가에 대항하는 저항적인 시민사회가 총력을 집결하여 투쟁한 것이었으며, 이 과정을 통하여 시민사회 전체의 정치적 의식이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성숙하는 결실을 맺었다. 이처럼 국가로부터 독립된 하나의 자율적 영역으로서 시민사회가 확고히 자리 잡아 가게 됨에 따라 향후 한국 사회는 민주주의를 방어하고 확대할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셋째, 6월 민주항쟁은 정치적 기회구조를 확대시킴으로써 노동운동을 비롯한 각종 대중운동의 활성화에 기여하였다. 노동자 대투쟁과 함께 급속히 발전한 노동운동은 물론이고 학생운동도 보다 체계적이고 조직화된 모습을 갖추게 된다. 그리하여 1980년대 후반 이후 오늘날까지 한국의 사회운동의 판도를 민중적으로 확산하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과거 사회운동의 정치적 성향은 주로 권위주의적인 정권의 억압적 지배에 대항하는 반독재 민주화 운동으로서 종교인과 지식인 집단을 제외하면 대체로 비조직인 활동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6월 민주항쟁 이후의 사회운동은 여성, 환경, 인권, 생황, 자치 등 다양한 부문에서 나타나고 있을 뿐 아니라, 훨씬 제도화되고 체계적인 형태를 취하는 경향이 높아졌다. 그리하여 노동운동의 자율성과 정당성이 제도적으로 승인을 받게 되는 사회적-정치적 분위기를 제공하였을 뿐 아니라, 여타의 각종 사회운동의 분출과 확산을 적극적으로 촉진하였다. 6월 민주항쟁을 계기로 분출하기 시작한 각종 사회세력의 운동조직화는 시민사회의 활성화에 필수적이 다원적 사회발전을 추구하게 만들어서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공고히 하고 있다.
넷째, 6월 민주항쟁은 사회운동의 이념적 성향과 노선을 공식적으로 분화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운동세력들 간에 시민민주주의 노선, 민족자주노선, 기층 민중노선 등으로의 분화가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분화는 오늘날 대별하여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의 두 가지 큰 흐름으로 파악되고 있다.

6월항쟁_서면일대

결국, 6월 민주항쟁은 한국에서 위로부터 지배하는 권력기구로서의 국가에 대응하는 독립적인 영역으로서 시민들이 밑으로부터 자율성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시민사회를 역사적으로 정립하여 그 출범을 선언한 장이라 할 수 있다. 특히 6월 민주항쟁의 전개 과정에서 화이트칼라를 중심으로 한 중간층의 사회적 역할이 뚜렷하게 부각됨으로써 향후 한국에서 국가와 사회의 민주화를 향한 사회적 세력집단으로서, 기층 민중만이 아니라, 광범위한 중간층 제 세력이 또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이 점은, 다시 말해, 앞으로 한국의 민주화를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간층을 핵으로 한 시민세력과 기층 민중세력이 서로 협력과 연대를 통하여 시민사회의 대항력을 제고시켜야 한다는 과제를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이다.
부산지역의 장구한 민주운동사에서 6월 민주항쟁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6월 민주항쟁은 우리 사회에 있어 지역운동의 역량들이 전국적인 힘으로 결집되고, 나아가 하나의 통일된 사회운동으로서 한국사회의 민주화라는 보편적인 운동 목표를 달성하는데 성공한 운동이었다. 특히 부산지역의 민주운동은 지도 중심의 구축과 그 역량의 축적이라는 차원에서 매우 모범적이고도 선구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부산민주항쟁의 지도부로서 <국민운동
본부>는 시민과 민중의 잠재된 저항적 역량을 장기적으로 개발하고, 통일적으로 결집해 내는데 있어 참으로 소중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1979년의 부마민주항쟁으로 분출되었던 부산시민의 위대한 저항정신은 1980년의 '5.17쿠데타'에 의해 배신당하고 만다. 그리하여 군부체제하에서 부산지역 민주화 운동은 숱한 시련을 맞게 된다. 이른바 '부림 사건'으로 불리 우는 탄압사건으로 부산지역의 민주화 운동역량은 거의 초토화 내지 소진되고 말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림 사건의 구속자들이 출소하는 1983년말까지 이렇다 할 움직임이 부산에서 없었던 것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부산지역의 민주화운동이 소멸되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조직의 재건을 위하여 은밀하게 지속적인 활동들을 추구하였던 작으나 매우 치열한 노력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하여 그 결집된 힘을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부산의 6월 민주항쟁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값진 교훈은 바로 여기에 있다. 6월 민주항쟁은 어느 순간에 갑자기 학생과 시민들이 힘을 모아 만들어 낸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민주화를 희구하는 부산시민의 뜨거운 열망과, 온갖 탄압과 보복에도 불구하고, 그 열망을 포기하지 않고 아래로부터 꾸준히 그리고 광범위하게 하나의 세력으로 조직화함으로써 마침내 노도와 같은 시민의 힘을 창출해 낸 우리 부산 시민들의 인내와 결단의 결실인 것이다. 부산지역 민주화 운동 진영의 이러한 노력은 6월 민주항쟁에서도 특징적으로 드러난다. 우선 부산지역의 6월 항쟁이 다른 어느 지역보다 일사불란하게 전개될 수 있었던 것은 국민운동본부의 실무를 담당하였던 중간 간부들이 상호 지속적인 연대와 교류를 추구함으로써 통일성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국민운동본부의 실무자들은 1970년대 후반부터 '부림사건' 그리고 이후의 계속된 민주화 운동의 과정에서 함께 고민을 나누며 운동역량을 축적해 왔던 것이다. 이러한 성숙된 지도력과 통일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전국 대부분의 국민운동본부가 6월 민주항쟁 이후 해소된 반면, 부산지역의 국민운동본부는 '7, 8, 9월 노동자 대투쟁'에도 조직적으로 지원을 할 수 있었다. 결국 부산지역의 민주화 운동은 부산시민의 고양된 주체적 인식과 불굴의 투쟁의지 그리고 운동지도부의 성숙된 역량과 지도력을 기반으로 하여 전개된 것이므로 다른 지역에 비하여 "매우 선구적이고 모범적"이라는 자랑스러운 차별성을 갖게 된 것이다.